(빌 4:14-20/장찬영목사) 8.5, 2012
빌(21)“하나님을 기쁘시게”
1.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것이 저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면, 그 현안문제와 상황으로부터 잠시 나와 그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그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귀 기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잠시의 여행이 되든, 개인적인 피정, 즉 묵상의 시간이나 금식의 시간이 되든, 그렇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해답을 얻고 다시 본질적인 부분에로 집중할 수 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브라질 상파울로의 집회여정은 참으로 적절하고도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집회는 물론 오가는 16시간 동안의 비행기 시간과 머무는 숙소에서 저는 올 2012년의 지난 전반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가을학기를 기다리면서 저 자신과 우리교회가 가야할 길을 위해 다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 가운데 감동있는 읽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제 작년에 나온 책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책입니다. 그 책 겉표지:‘편안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책을 절대 읽지 말라. 그러나 진짜 제자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라. 지금 알라바마 버밍엄에 위치한 브룩힐즈교회의 담임목사인 데이빗 플랫(David Platt)이 쓴‘Radical'이라는 책입니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책 이름을 그대로 영어음역 그대로인‘래디컬'로 나왔습니다. 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던 플랫 목사는 30대 후반에 미국 중산층의 전형적인 백인들이 모인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저 적당하게 안락하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하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과연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그저 세상의 성공을 쫓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사는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지를 실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그들은‘래디컬 실험’(Radical experiment)이라 명명하여,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자기 안정을 위한 삶이 아닌, 예수님이 그리고 초대교회가 보여주신 이‘급진적인 복음’에 순종하며 그렇게 살았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부제가 참 의미가 있습니다.‘Taking Back Your Faith from the American Dream'입니다. 즉, 이 래디컬 실험이란 바로“당신의 믿음을 아메리칸 드림으로부터 되돌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아메리칸 드림’이란 1931년 제임스 에담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 그 의미는“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충만하게 실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출생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 됨 자체로서 대접받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플랫 목사는 말합니다.“자, 언뜻 보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큰 꿈을 꾸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잘못될 일이 있겠는가. 큰 목표를 추구할 자유는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확실하게 보장해 주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에는 위험스러운 추정이 깔려 있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죽이는 목표’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조심하지 않으면 그 길에 앞장서게 될지도 모른다.”
즉, 이 말은 아메리칸 드림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믿고 의지해서 개척지인 이곳 미국에 와서 무언가를 이루는 인생의 성공이라는 개념을 무척이나 소충하게 여기고, 대중들 역시 이런 사고에 쉽게 매료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플랫 목사는 다시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복음은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라고 주문한다. 인간이란 하나님을 떠나 독자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할 능력이 전혀없는 존재임을 복음을 통해 직면하게 하시는 것이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는 말씀의 속뜻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과정에서 빠지기 십상인 교묘하고도 치명적인 함정이다. 제힘으로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누구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쉽다. 에담스의 말을 빌리자면‘개인이 성취한 것으로 인정받게’되는 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인간의 존재와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복음과 아메리칸 드림은 명확하고도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목표는 인간을 으뜸으로 여겨 이 땅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복음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여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데 있다.”
2.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백인 중산층이 모인 이미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여, 사람들이 볼 때는 부러워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복음의 본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여과없이 고백하는 한 목회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데이빗 프랫 목사는 자신을 향해 사람들이‘최연소 대형교회 담임목사’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분은‘역사상 최연소 초소형 교회 담임목사’였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더 오게 하려고 애쓰는 이미 수천 명의 교인들을 돌보고 있는‘현실’과 수 천명에 이르는 추종자들을 물리치시고 그저 열 두 명의 제자에게 집착하시는 예수님의‘이상’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수 많은 인파가 밀려올 때마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요6:53) 오늘날 교회성장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얘기를 하실 때마다 제자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눈에 선하다는 것입니다.“주님, 제발 그런 피 타령, 살 얘기 좀 그만 하십시오. 그런 얘기를 해서는 사람들이 왔다가도 그냥 갑니다.”...그렇게 말씀이 끝나면, 그 많던 회중들은 하나 둘 흩어지고 고작 열 두 명만 몇 명의 여인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대중들의 시선을 끄는 일 따위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감당해야할 엄청난 대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이 따나갔지만, 주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셨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자신에게 오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설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급진적인 메시지를 듣고 따르는 몇몇에게 집중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철저하게 순종하는 그 소수를 사용하셔서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데이빗 목사의 고민을 들어보십시오.“퍼뜩 정신을 처리고 보니, 우리는 출석 교인과 예산 규모, 예배당의 크기로 성공을 가늠하는 이 시대의 교회 문화 앞에 서 있었다. 교회가 으뜸으로 여기는 일들을 예수님은 쳐다보지도 않으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물음이다.“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사람들이 다 도망갈 만큼 과격한 말씀을 하셔도 나는 군말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두 번째는 조금 더 까다로웠다.“예수님께 순종할 것인가?” 나는 이것이 가장 겁이 난다. 혹시 나도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며 그분을 직접 만났던 대다수의 군중이 보였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게 될까 봐 몹시 두렵고 떨린다....지금 나는 나그넷길을 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 길이 비단 목회자들에게만 가는 길일까?...교회든 그리스도인이든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을 토대로 성공을 추구하고 삶을 향유하면서 지금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 혹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을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분을 진정으로 믿고 따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담대하게 묻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3.
바울은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의 그림으로 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는 이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고,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비금 빌립보 감옥 안에 있습니다. 자기가 잡아서 들여 보냈던 곳에 이제는 자기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처지에 있는 자기를 외면하지 않고 유일하게 도와준 빌립보교회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14-15절“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에게 협력한 교회는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과 빌립보교회를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무모하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가 가진 학력이나 재산, 신분을 가지고서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감옥에 들어갔으면 빨리 나올 궁리를 할 것이지, 그 안에서 자족함을 배우고 있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하니 답답합니다. 그야말로 바울은 참으로 래디컬한 사람입니다.
또 그런 바울을 돕는 빌립보교회를 보십시오. 한 때 초대교회에서 바울은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회심을 사람들은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변심하여 초대교회를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경계의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 그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또 그때는 역사적으로 큰 가뭄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을 도운 교회는 유일하게 빌립보교회였던 것입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어려운 경제를 핑계로 자기의 유익을 구할 수 있을 때, 빌립보교회는 기꺼이 바울을 도왔으니, 빌립보교회는 참으로 래디컬한 교회임에 분명합니다.
17-18절“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지금, 빌립보 교회의 도움을 받는 바울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먼저, 바울은 그들의 봉헌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큰 가뭄가운데 마땅히 써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 마저 포기하고 보낸 그들의 땀과 피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자기를 도움으로 인해 오히려 오해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빌립보교회를 보니 더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물을 받으면서 바울은 안타까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바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은 그 물질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교우들이 보낸 선물을‘향기나는 제물’(fragrant offering)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스스로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의 상징으로 소나 양, 염소 혹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비둘기를 잡아서 드렸습니다. 당시 그들이 성전으로 가지고 와서 드렸던 희생 가축들은 집에서 기르던 것이었고, 자기 고향에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까지 그 먼 거리를 끌고 와서 드려졌던 것입니다. 즉, 자기의 수족같고 마치 가족같은 소와 양을, 그 가운데서도 가장 건실하고 병들지 아니한 것으로, 즉 눈가림이나 속임이 아닌 전심의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알고 있는 제사장은 짐승의 머리에 간절히 안수함으로 그 백성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됨과 그리고 이제는 죄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아래 살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성전 안은 물론 짐승을 잡는 제사장, 제물을 드리는 봉헌하는 사람들 모두 이 드려진 짐승의 피냄새로 진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린내 나는 짐승의 피냄새가 아니라, 죄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구원의 향기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빌립보 교회와 교우들의 행위를 바로‘향기로는 제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빌립보 교회와 교우들의 도움은 자신들이 먹고 남아 돌아서 도운 것이 아니라, 거룩한 희생을 한 봉헌이었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도 궁핍한 상황에서 그들이 마땅히 쓸 것을 줄이고 아껴서 바울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여 바울을 도운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와 교우들의 행위는 희생 제물이었고, 이 제물을 하나님이 향기로운 제물로 기뻐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하나님을 기쁘시게’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영어표현으로는‘an acceptable sacrifice, pleasing to God’입니다. 즉,‘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받으실만한 제물’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의 분명한 기준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물질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바로‘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받으실만한 제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봉헌인 것입니다.
왜 빌립보교회 교우들의 봉헌을 향해 바울이 감격하고 기뻐합니까? 진정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와 양을 잡으면서 감격하고 감사했던 이유는 원래는 죄의 값으로 인해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자기 대신 짐승들이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외면적으론 짐승을 드렸지만, 내면적으론 자기 자신을 드렸던 것입니다. 즉, 진정한 봉헌은 생활하고 남은 혹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체면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봉헌은, 돈이 전부라고 하는 맘몬시대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좇을 수 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오직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믿음으로, 모든 것이 주의 것임과 주께로 왔음을 고백하는, 즉,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리는 가장 래디컬한 믿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마6: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4.
다시, 데이빗 플랫목사의 책, 래디컬로 돌아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로서 가장 마음에 거리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교회 운영 계획과 전략, 수단과 방법, 시스템이 성공적인 교회성장의 일부분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교인들도 더욱 편리하고 안락한 시스템 그리고 복음에 대한 적당한 부담을 갖는 신앙생활을 원한다....오늘날 소위‘성공적인 교회’를 가꿔 내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꼽아보라. 오늘날의 문화들을 감안하면, 꼭 하나님의 권능의 힘입지 않고서도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으며,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몇 가지 핵심요소만 채우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멋진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흥밋거리를 좇는 현대문화의 특성상, 군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타가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전달자, 비디오로 상영하는 한이 있더라도 뛰어난 설교자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다음은 찾아오는 군중들을 수용할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수백만 수천만 불을 쏟아 부으면서까지 퍼포먼스를 진행할 건물을 짓고 찾는다. 이런 예배당은 어느 각도에서 보든지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기대를 충복시킬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일단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면 다시는 떠나게 않게 붙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연령과 상활별로 어린이, 청소년, 가족을 비롯해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최상급, 최고급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들을 교회 정문까지 데려다 주면 나머지는 어린이 사역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주는 식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직접 이런 교육을 시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 생략과 과장이 심하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날 혹시 우리가 원하는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닌가?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총동원한 전략에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음이다. 바로 하나님의 권능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세가 빠진 것이다. 주님의 권세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은품 정도인가? 우리는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겉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앉은 것을 보고 공동체 가운데 영적인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무엇이‘하나님을 기쁘시는’하는 것일까? 이것이 요즘 저의 고민이요, 기도입니다. 동시에 나는 이것이 우리교회와 여러분의 고민과 기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분명 그 자체로 래디컬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 교회는 래디컬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우들은 래디컬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드림과 삶을 선택한 래디컬한 빌립보교우들에게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절“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찬양하십시다. 찬송가“나 주님의 기쁨도기 원하네"
1부 오전8시 (한어권)
2부 오전10시 30분(한어권)
Youth 오전 10시 30분
EM 오전 10시 30분
어린이교회 오전10시 30분
화-토 오전 6시